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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우리 모두 'futurist'가 돼야 하는 이유.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0.16
          

우리 모두 'futurist'가 돼야 하는 이유

 

이영탁 중소기업미래경영원 이사장

 

 옛날 농경사회에서는 ‘과거’와 ‘현재’에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과거를 보면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과거와 현재가 많이 다르다. 앞으로의 미래는 과거와 현재 간의 차이 이상으로 달라질 것이다. 미래를 따로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과거를 현재 또는 미래와 연결시킬 바에는 차라리 과거를 모르는 게 낫다”는 말도 있다.


 “과거와 싸우지 말고 미래를 만들어라. 그러면 그 미래가 과거를 정리해 줄 것이다. (Don't fight with the old. Create the new. Then, the new will kill the old.)” 마치 우리 사회를 염두에 둔 경고의 메시지처럼 들린다. 세계 최고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말했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지만, 미래에 대한 준비가 소홀하다.” 또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의 빌 할랄 교수도 “미래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어둠 속에서 방향감각 없이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것과 같다”라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처칠 수상도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미래를 잃는다”고 했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계속 늘어나 이제 웬만하면 90을 넘어 곧 100세까지 사는 세상이 오고 있다. 반면 저출산 고령화 현상은 경제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림으로써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급격하게 늘어나는 고령인구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자칫하다가는 60세 전후에 은퇴하여 30~40년을 빈둥대는 지루한 인생을 만들 수도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어제까지 잘 나가던 기업이 오늘 문을 닫거나, 지금 잘 나가는 기업이 내일 당장 쇠락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세계화와 더불어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정보통신의 발달로 온 세상이 평평해짐으로써, 무한 경쟁이 불가피해진 결과이다. 이제 미래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기업은 살아남기 어렵다.


   정부는 어떤가? 미래사회를 움직이는 파워는 더 이상 제도적인 쪽에 있지 않다. 개인의 권력화가 무섭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SNS로 연결된 개개인들이 서로 소통하면서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어떠한 정책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까? 최근 정부가 하는 일들이 사사건건 암초에 걸려 좌초되는 것을 보면서, 과거 식의 접근방법은 이제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실감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미래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거기에 맞는 ‘미래 준비’에 있다. 세상에는 많은 미래 학자와 미래 연구기관이 있다. 그들은 매일 엄청난 양의 새로운 미래 지식을 생산해내고 있다. 전 세계인들은 이러한 미래 지식을 수집해서 각기 자기 분야에 활용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미래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돌이켜 보면 35년 전에는 PC가 없었고, 25년 전에는 휴대폰이 없었으며, 15년 전에는 구글이 없었다. 다시 말해 지난 15~35년 사이에 이처럼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10~20년 후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 갈수록 변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아마 사람을 늙지 않게 하거나  죽지 않게 하는 줄기세포(ageles or immortal cells)같은 것이 나올지도 모른다.


 미래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고전이나 인문학도 중요하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맞는 말이다. 고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나 법고창신(法古創新)이 바로 그것이다.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알고,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만든다.” 결국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는 바로 미래를 위한 것이다. 이 말은 서양의 미래학자가 한 말이 아니다. 동양에서도 예로부터 선현들은 미래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는 좀 막연하고 거창한 것으로 이해하거나 자기와는 직접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 미래는 멀리 있는 남의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것이다. 내 자신의 미래, 내 가족의 미래, 내 직장의 미래, 내가 살고 있는 국가사회의 미래가 바로 나의 미래이다. 따라서 미래는 나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이다. 이처럼 소중한 미래를 그냥 예측만 할 것인가? 아니다. 내가 뜻하는 대로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나의 미래다.


 ‘미래학’이란 무엇인가? 미래 비전이나 목표를 달성해나가는 방법에 관한 학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가능한 미래’(likely or possible future)와 ‘바람직한 미래’(desirable or preferable future)사이의 간극을 줄이려는 노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에 관한 내용으로서 검증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정식 학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미래는 복수(複數)”라는 말이 있다. 하나가 아니라는 뜻이다. 각자가 자기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훌륭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어떤 미래를 만드느냐 하는 것이야말로 각자가 하기 나름이다.
 이제 우리 모두 ‘퓨처리스트(futurist)’가 되어야 한다.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멋진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 것이 성공적인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