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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미래예측과 기업경영.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6.29
          

미래예측과 기업경영

<!--[if !supportEmptyParas]-->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기획예산실장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벗어나는 문제다. 아무리 뛰어난 미래학자나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예측은 필요하고 불가결하다. 예측은 아무리해도 예측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래도 좀더 과학적인 예측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또한 예측의 정확도는 방법론이나 데이터의 신뢰도에 따라 충분히 높아질 수 있다. 실험이나 연구를 통해 진리나 법칙을 찾는 자연과학과는 달리 사회현상이나 인문현상을 다루는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에서는 엄밀하게 말하면 진리나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가 사회과학, 인문과학 등의 표현을 쓰는 것은 방법론적 정합성, 객관성을 통해 과학성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미래예측력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미래예측력은 개인이나 조직, 기업이나 국가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데, 특히 기업경영에서 미래예측력은 오늘날 창조적인 CEO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역량으로 손꼽힌다. 기업의 경쟁력은 미래에 대한 예측과 준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한경쟁이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유수한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견주고 경쟁하기 위해서는 미래선점과 이를 위한 전략수립이 절대 필요하다. 미래를 선점하는 기업은 자신이 준비해온 시나리오와 전략에 따라 시장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 굴지의 기업들을 보면 미래예측과 전략을 경영의 핵심부분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영국 최대의 기업인 브리티시 텔레콤(BT)은 아예 미래예측 전문가를 고용해 미래예측을 기업의 미래전략과 연계하고 있다. BT의 미래예측가가 바로 이언 피어슨(Ian Pearson)인데, 그는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미래학자로 유명하다. BBC 방송은 연초에 피어슨을 통해 미래를 전망하는 프로그램까지 마련하고 있다. 피어슨은 원래부터 미래예측을 전공한 학자는 아니었다. 그는 영국 퀸스 대학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했고, 1985년에 브리티시 텔레콤에 엔지니어로 입사해 컴퓨터 네트워크와 프로토콜 관련 일을 담당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기술변화를 예측하는 타고난 재능이 있었고, 그 덕분에 1991년부터 BT의 미래예측 전문가로 재고용되었다. 이때부터 피어슨은 미래예측 전문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85%가 넘는 예측적중률로 세계적인 미래학자의 반열에 당당히 올라섰다. 그는 2001년 소니가 개 로봇 아이보를 출시하기 몇 해 전에 이미 로봇 애완동물시대를 예측했고, 또한 지금 현실화되고 있는 무인 대중교통수단의 상용화도 정확하게 예측했었다. 그는 현재 FUTURIZON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미래예측 사이트를 운용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누구든지 예측은 할 수 있지만 그로부터 정확한 것을 얻는 사람은 단지 소수일 뿐이다(Anyone can predict stuff, but only a few get it right)”라는 말이 눈에 띈다.

한편 오일쇼크를 정확히 예측한 것으로 유명한 미래예측전문가 피에르 왁(Pierre Wack)은 미래학을 비즈니스에 응용하는 방법을 정립한 사람이다. 왁은 원래 로열더치셸의 런던사무소에서 국제유가에 영향을 미칠 만한 사태나 변화를 분석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OPEC(석유수출기구)이 기름을 무기화하여 국제적인 영향력을 확대하기 하기 위해 유가를 올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석유가격을 재교섭하는 1975년이 변동시점이라는 예측을 했다. 그는 이 예측에 근거해 두 개의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하나는 현상유지라는 내용이고, 또 하나는 ‘OPEC의 일방적 선언에 의한 석유가격 급상승이라는 시나리오였다. 로열더치셸의 중역들은 처음에는 왁의 예측 시나리오에 대해 긴급성을 인식하지 않았지만 왁의 완강한 주장을 수용해 경영전략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결국 197310월 제4차 중동전쟁 발발로 석유가격이 폭등하면서 오일쇼크가 밀어닥쳤고, 왁의 예측 덕분에 업계하위였던 셸은 전쟁종결 후 세계 2위로 올라섰고 수익성면에서는 세계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피터 슈워츠 역시 로열더치셸에 합류해 기업의 장기전략 수립에 미래예측을 응용하는 분야를 담당했다.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IBM, 엑슨모빌, GE, 벨 등 굴지의 기업들은 자사 내에 미래연구 및 예측을 담당하는 부서를 만들거나 미래예측가를 고문으로 초빙해 장기적인 기업전략 수립을 맡겼다. 구미의 기업들은 이렇게 70년대 이후부터 경영전략에 미래예측이나 미래학을 응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아직까지도 미래 예측을 경영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지는 못하고 있고 미래예측 활동도 그리 활발하지는 않다. 국내의 기업들은 미래 트렌드에 관심을 갖는 정도일 뿐이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비전을 제시하는 CEO는 많지 않으며, 독자적인 기술 로드맵으로 미래전략을 준비하는 기업은 극히 일부의 대기업에 불과하다. 국내의 대기업들은 주로 그룹의 계열 연구소를 중심으로 기술예측과 미래 트렌드를 연구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는 삼성종합기술원이 기초소재, 원천기술 분야의 미래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계열연구소인 삼성경제연구소는 트렌드 분석이나 연구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삼성경제연구소는 CEO Information, SERI 경제포커스등의 간행물을 통해 미래예측관련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고, 또한 매년 연초에 국내외 10대 트렌드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LG그룹은 LG경제연구원 내에 미래연구팀을 만들어 운영하면서 국내 경제환경을 분석하고 중장기적 위험과 기회를 예측하고 있다. SK그룹도 SK경영경제연구소에서 미래연구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미래예측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업 경영에서 미래예측 전문가들의 조언을 활용하는 사례는 점점 늘고 있다. 구미기업에서 70년대 이후 나타난 미래예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이제 국내기업에서도 점점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