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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 2016년 송년 인사: 탈 진실(post-truth) 시대를 극복하자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2.26
          

2016년 송년 인사: ‘탈 진실(post-truth) 시대를 극복하자면’


이영탁 세계미래포럼 이사장

  이번에도 어김없이 연말이 찾아왔다. 이제 곧 2016년이 가고 2017년이 열리겠지. 새해가 머지 않는 이때쯤이면 한 가닥 희망이 있었다. 지난 한해는 어둡고 답답했지만 새해에는 좀 더 밝아지겠지 하는 희망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희망은커녕 어둠이 더 짙어질 것 같은 느낌이 강한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옥스퍼드 사전이 2016년 11월, 올해의 단어로 ‘post-truth(탈 진실)’를 선정하였다. 진실을 벗어난, 또는 진실을 따지거나 중요시하지 않는, 심지어 무시해버리는 흐름이나 추세를 지적한 말이다.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과 선동이 여론을 조성하는데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올 한해 영국의 브랙시트(Brexit)와 미국 대선에서의 트럼프 승리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다. 거기다 우리는 최순실 사태를 겪으면서 이 말의 뜻을 절감하고 있다.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한 달 가까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들 가슴은 여전히 답답하고 울화통이 계속 치민다. 당사자들은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반성과 사과는커녕 변명과 부인으로 일관하여 사람들의 짜증과 연민을 가중시키고 있다. 나라야 어떻게 되든 나만 살고 보겠다는 볼썽사나운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지금처럼 사회 지도층의 천민성이 여실히 드러나 온 국민을 이처럼 실망시킨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한 시대를 같이 산다고 해도 지식과 사고의 수준이 사회적 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이런 정도밖에 안 되는 줄은 몰랐다.

  요즘 진실이 가려지고 비 진실이 횡행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다 보니 엉터리 기득권층에 실망한 다수의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사회를 혼란스럽게 몰아가고 있다. 이 틈을 타 일부 사람들은 이들을 겨냥해 마치 사실처럼 들리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말들을 쏟아냄으로써 이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든다. 고구마와 사이다 이야기가 흥미롭다. 고구마는 목이 답답하고 막히지만 사이다는 시원하고 막힌 것을 뻥 뚫는다. 사이다 발언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말을 속 시원하게 해주는데 굳이 진실을 따질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다 보니 진실이 설 자리가 없다. 진실 여부도 잘 가려지지 않는다.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은 예외 없이 거짓과 위선을 반복한다. 뻔히 드러난 사실인데도 모르쇠, 발뺌, 위증으로 우선의 위기를 모면하려 든다. 온통 문제투성이인데도 책임지겠다는 사람 하나 없다. 아니 진심으로 미안해하거나 반성의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이런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으니 그들이 주는 건 환멸이요, 받는 건 멸시일 뿐이다. 

  지도자들의 이러한 모습은 다수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재촉하고 있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파워는 소수의 엘리트가 아니라 다수의 보통 사람들 손에 이미 넘어가 있다. 이제 더 이상 영웅이 없는 세상이다. 이런 판에 지도자는 산업화시대의 사고나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보통 사람들이 공분하는 건 당연한 일. 이것이 바로 SNS로 연결된 사람들이 나서서 시민혁명을 일으키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게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제 곧 2016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해야 하는데~. 하는 일도 전 같지 않는데다 해가 바뀐다고 나아질 희망도 없는데~. 주변 사람들 얼굴이 만날 때마다 걱정이 많아지는 것 같은데~.
모두 제 잘못은 제쳐두고 남들 탓만 하는 것 같은데~. 나서서 문제를 수습하고 과거를 정리하면서 미래를 준비하자는 사람은 안 보이는데~.

  우선 현재 상황을 극적으로 역전시켜야 한다. 지금은 대한민국호가 세월호처럼 가라앉고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이러다간 배에 탄 국민과 나라가 모두 죽게 생겼다. 지금의 위기를 개인의 지위와 명예의 상실에 대한 위기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우외환이 겹친 데다 국격이 말이 아니게 떨어지고 있다. 일본과 중국이 우릴 어떻게 바라보며 희화화하고 있는가. 최고 지도자가 개인의 안위만 생각하다간 세월호 선장처럼 되고 만다. 제발 지금부터라도 아집과 단견을 버리고 그동안 보여준 민낯을 거두시라. 지존(?)의 자리에 있으면서 소소한 법적 책임을 따질 게 아니라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개인의 안위보다는 국가 사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우리 국민도 크게 변해야 한다. 내 안에는 최순실이 없는지 겸허하게 살필 일이다. 남의 약점을 지적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라고 한다. 스스로는 멋대로 살면서 남 탓만 해가지고는 문제 해결이 가능하지 않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더 나쁘다고 하면서 피해자인양 행세하는 것은 국민의 도리가 아니다. 촛불 민심은 어느 한 사람을 탓하기 보다는 우리 사회가 지닌 뿌리 깊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낡아빠진 저 수준의 리더십과 함께 갈수록 심각해지는 불평등, 계층 간 신분이동이 안 되는 불공정 사회 문제를 겨냥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

  동시에 이제부터는 우리 모두가 기본으로 돌아가 평상심을 되찾아야겠다. 그 중에서도 자기 사랑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게 자기 자신인데 그동안 너무 학대하였다. 돈과 권력에 눈이 멀어 비굴한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해관계에 앞서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다. 남을 경쟁의 상대로만 인식하여 제대로 된 배려를 하지 못했다. 남의 잘못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도 자신의 잘못엔 한없이 관대했다.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반성은커녕 둘러대기에 급급했다.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스스로를 학대한 일인가. 이러한 자기 학대가 최근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여지없이 표출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좀 더 자기 자신을 아끼고 보호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모든 일에 순서가 있듯이 이런 자기 반성과 자기 사랑은 벌족(閥族, 사회 지도층의 별칭)이 앞장서야 한다. 다수의 보통 사람들도 왜 잘못이 없겠는가만 서로 간에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니다. 벌족이 먼저 나서서 반성과 사과를 해야 한다.  한마디로 벌족의 저급함에 진저리가 난 국민들에게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 보통 사람들도 달라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도자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전 투구할 게 아니라 먼저 솔선하고, 양보하고, 낮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지금 가라앉고 있는 대한민국 호를 건져 올리면서 탈 진실시대를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이정구(李鄭具)1> 정신이 새해에는 힘차게 솟아나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구시대 리더십에 중증을 앓았던 2016년을 뒤로 하고 2017년부터는 새로운 리더십을 중심으로 새 시대를 멋지게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1> 본인이 2012년에 발간한 ‘벌족의 미래’에 관한 소설의 제목


   *지난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정유(丁酉)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