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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김영란법의 완성은 고액권 발행 폐지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10.24
          
김영란법의 완성은 고액권 발행 폐지로

이영탁 세계미래포럼 이사장

 ‘김영란법’으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 말이 많은 가운데 사람들은 움츠리고 있다. 대부분의 식당마다 손님이 많이 줄었고, 알만한 인사의 상가엔 복도 너머까지 빼곡하던 조화가 겨우 손가락으로 셀 정도다.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에서 도시락을 먹고, 어른들이 줄을 서 ‘더치페이’를 하느라 음식점 계산대가 복잡하다. 급기야 부산 기장군수는 5천만 원이 넘던 판공비를 내년엔 아예 편성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세상이 바뀌긴 바뀔 모양이다. 2011년 ‘벤츠검사’에서 시작된 작은 소용돌이가 바야흐로 세상을 뒤흔들며 곳곳에서 생경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화훼 농가나 횟집들이 “죽게 생겼다”는 게 걱정이긴 하지만, 바람을 멈추긴 어렵게 됐다. 차제에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부패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 버려야겠다. 김영란법이 당초에 ‘부패차단’에서 시작되지 않았던가. 사제지간에 오고가는 캔 커피나 카네이션을 없애자는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행위’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다보니 이러한 혼선은 피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지금 이렇게 어수선하긴 해도 김영란법의 조속한 완성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요 사명이다. 이를 하루 빨리 우리 사회에 정착시켜 비리와 부정이 없는 깨끗하고 투명한 사회를 위해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5만 원권의 발행을 폐지하도록 하자. 여러 논란 끝에 지난 2009년 6월부터 5만 원권이 발행되었다. 순기능도 있지만 지금 보면 역기능이 큰 것 같다. 무엇보다도 화폐 자체가 퇴장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고액권의 발행비율은 70%를 넘는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중앙은행으로 돌아오는 회수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심하게 말하면 ‘갖고만 있고 쓰지는 않는 돈’이다. 시중에서 통용되지도 않고 은행으로 돌아오지도 않는다면 그 돈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제 금융은 모바일로 한다. 빌 게이츠는 ‘앞으로 금융은 지속되겠지만 금융기관은 없어질 것이다.’ 라고 까지 하였다. 신용카드나 각종 모바일 수단의 확산으로 현금을 직접 사용할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1000원 짜리 아이스크림도, 버스요금도 현금으로 지불하지 않는다. 요즘 젊은이들은 영어사전을 사지 않듯이 현금도 거의 들고 다니지 않는다. 이른 바 현금 없는 사회 (cashless society)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세상은 이렇게 빨리 변하는데 우린 핀테크를 외치면서도 정작 고쳐야 할 건 그대로 두고 있다. 그런 사이 부정, 비리, 탈세는 고액권을 이용해 계속 활동하고 있다. 알고도 그냥 두는 건지,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그러는 건지 답답함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까지 한다.

 이대로 가다간 고액권의 퇴장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다름 아닌 저금리 내지 제로 금리 때문이다. 은행에 맡겨봤자 금리가 얼마 되지 않고 그나마 자꾸 내려가고 있다. 은행 간 거래 금리이긴 하지만 마이너스 금리까지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니까 최고의 안전자산인 현금이 선호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5만 원권의 선호, 보관 및 퇴장은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여유 있는 가정에 대형 금고가 들어가고 은행의 비밀금고마다 현금이 쌓여있다는 소리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미 500유로 지폐의 발행을 2019년부터 중단하기로 했다.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역시 워싱턴포스트에 ‘100달러 지폐를 없앨 때('It’s time to kill the $100 bill)’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그는 “고액권은 부패와 범죄로 이어지기 십상”이라고 지적했다. 북유럽 국가들에선 이미 현금이 사라지고 있다. 카드나 폰을 대면 간단히 해결되는데, 많은 비용을 들여 은행 지점이나 ATM을 설치해야 할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현금을 받지 않는다며 ‘no cash’ 사인을 붙인 가게가 수두룩하다. 현금을 내도 거슬러 줄 잔돈을 준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올 9월 말까지 5만원권 발행액이 70조원을 넘었으니 절반만 쳐도 35조원 이상이 유통되지 않고 있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에 숨어있을까? 그 돈이 부정이나 불법과 관련된 것이라면 누구의 책임인가? 어떻게 해야 그동안의 비리가 밝혀지고 모습을 드러내게 할 수 있을까? 하다하다 안될 때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바로 화폐개혁이다. 필자는 일본과 함께 100:1로의 화폐단위 조정을 주장한 바 있다. 경제규모의 확대로 거래 편의를 위해 일부에서 얘기되고 있는 리디노미네이션(redinomination)을 앞당긴다면 일거양득이 되겠다.

 차제에 정부에서도 김영란법 시행에 만전을 기해야 함은 물론 스스로 정비할 건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정부예산 중 증빙 없이 현금으로 사용 가능한 비목부터 정리하고 볼 일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현금으로 격려금 주고 하는가. 기업에서도 금전적인 인센티브는 효과가 없다는 이론이 나오고 있다. 하물며 청와대, 검찰, 경찰, 감사원, 국회 등 힘센 부서에 들어있는 특수활동비가 왜 지금도 필요한가. 얼마 전 국회의 모 정당 대표가 매월 정기적으로 지급받은 활동비의 일부를 집으로 가져갔다고 했는데도 아무런 조치 없이 그냥 지나가는 것은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

 김영란법에 대해 말이 많긴 하지만 시대적 산물이다. 20여 년 전 실명제가 전격 단행되었을 때에도 그랬지만 우리는 지금 엄청난 일을 해내고 있다. 일부 도덕의 영역까지 법으로 규제하는 문제가 있긴 해도 단기간 내에 깨끗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이해할 일이다. 아마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 아니겠는가.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 법이 우리 사회에 하루 빨리 잘 정착되도록 하는 것이다. 각 경제주체가 초기엔 다소 불편하더라도 김영란법의 성공을 위해 적극 이해하고 협조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