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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동양에는 참회록이 없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8.29
          

동양에는 참회록이 없다

이영탁 세계미래포럼 이사장

 최근 전직 청와대 비서관이 대통령 해외 순방 중 물의를 일으켜 자진 사퇴한 후 3년 만에 다시 SNS에 등장하면서 첫 마디가 억울하다는 표현이었다. 이걸 보면서 동양에는 참회록이 없다는 말이 문득 머리에 떠올랐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3대 참회록에 동양 이야기는 없다. 왜 우리나 중국, 일본에는 역사적으로 통렬한 자기비판이나 반성이 없을까. 2차 대전을 일으킨 나라로서 독일 지도자가 참회하는 모습은 보았어도 일본 지도자의 그러한 모습은 보지 못했다.


 우리 역사를 둘러보아도 부끄러운 죄인은 많지만 진정한 참회록은 없었다. 가렴주구(求: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어 들이고, 무리하게 재물을 빼앗음)당사자가 반성이나 자책은커녕 송덕비를 요구한 예까지 있었다. 반만년 역사에서 우여곡절이 많았건만 당시 조국과 민족 앞에 중죄를 저지른 사람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나 반성은 없었다. 자기 목숨을 건지려는 자백은 있어도 자율적인 눈물 이야기는 드물다. 남을 향해선 엄중한 잣대로 삿대질을 해도 정작 자신을 향한 비수는 없다. 법망에 걸려들어 죄 값을 치른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반성은커녕 자기 보다 더 나쁜 사람도 멀쩡하게 살아가는데 재수가 없어 그렇게 되었다면서 세상 탓을 하기 일쑤다. 가끔씩 일어나는 저명인사들의 자살도 마찬가지, 참회보다는 현실 도피와 사실 은닉이 목적이었다면 지나친 말일까. 

 후안흑심(厚顔黑心)이라는 말이 있다. 얼굴이 두껍고 심보가 검다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보아 영웅호걸이나 최후의 승리를 거머쥔 사람들의 공통점은 명분과 의리보다 실리와 간계에 능하다는 것이다. 한 예로 유방이 역발산하는 항우를 이기고 한나라의 고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비굴함이라는 특유의 무기를 유감없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삼국지의 조조도 점잖커나 명분을 중시해서가 아니라 모략과 술수에 능함으로써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 중국에서 나온 말이지만 지금까지 우리에게도 통하는 점이 많다고 본다. 

 이러한 후흑학을 두고 난세의 처세술이라고도 한다. 옛 춘추전국시대처럼 나라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아 적을 물리쳐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 때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지 않는가. 그런데도 후흑의 처세술은 갈수록 기를 부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 중에서도 부나 권력을 많이 가진 자의 기교나 수법은 도를 넘고 있다. 소수의 가진 자의 이러한 행동이 다수의 못가진 자의 삶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부당하거나 불법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에 사회적 신뢰가 쌓이지 않고 계층 간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갈수록 확산되어 결과적으로 사회적 불신과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몇 년째 베스트셀러 반열에 계속 올라있는 미움받을 용기에 나오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데 자신이 아닌 나쁜 그 사람을 탓하고 불쌍한 나를 변명한다. 과거 얘기에 거품을 품지만 이것도 지금의 나를 변명하는 데서 나아가 스스로 현재에 안주하기 위해서 과거를 꾸며대는 것이다. 그런 빌미들 때문에 자신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고 이는 결국 진정으로 변화할 용기가 없는 모습으로 남는다. 현실 문제가 남이 아닌 바로 자신 때문인데도 반성이나 참회는커녕 남이나 과거 탓만 하는 것이 바로 요즘의 세태라고 한다. 

 왜 반성이 없을까? 당사자가 못난 탓도 있지만 세상에 나쁜 짓을 하고도 멀쩡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고도 죄의식이 없다. 더 나쁜 짓을 한 사람도 아무 탈 없이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 면이 있다. 그러다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기 인생을 두고는 자기 탓이 아니라 부모 탓, 세상 탓, 심지어는 재수 탓으로 돌리게 된다. 이처럼 내 탓이오!’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책임지고 할 일이 없고 결국 현재의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고 본다. 

 참회는 자기반성의 거울이라고 한다. 참회가 있어야 과거의 한 페이지가 정리되고 새로운 출발이 가능하다. 따라서 참회 없이는 미래가 없다. 일찍이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일갈하였다. 이 말에는 자기 자신도 모르면서 무얼 한단 말인가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노력이 절대 필요하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참회나 반성 없이 크고 작은 죄를 되풀이하여 짓고 있으니 이러다가 앞으로 어떤 세상이 오겠는가. 진정한 참회는 정직의 단계를 넘어 스스로 변화할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다.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자세가 아니라 반성과 실천을 다짐하는 가운데 이러한 과오를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참회의 진정한 모습일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에 이어 참회하는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