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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 기술 없는 공연예술은 가능한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5.02
          

기술 없는 공연예술은 가능한가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얼마 전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 원작의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를 관람했다. 세계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사회소설, 톨스토이 문학의 정수, 19세기 최고의 근대소설 등의 극찬이 따라다니는 걸작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만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령, 책으로 된 소설을 읽을 수도 있고 영화나 연극으로 관람할 수도 있다. 책을 읽을 때와 영화·연극을 감상할 때는 각각 우리가 사용하는 감각이 달라진다. 시각만 쓴다고 하더라도 텍스트로 볼 경우와 영상을 보면서 소리를 듣는 경우는 두뇌의 뇌파가 달라진다. 인간의 오감 중 더 많은 감각을 사용할 때 뇌파 활동은 더 활발해지고 실감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안나 카레니나의 동일한 스토리를 어떤 장르로 보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흔히 내용이 본질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효과의 차이는 어떤 형식이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공연으로 볼 때는 눈과 귀가 즐거워지고 가슴이 쿵쾅거리는 감동을 맛볼 수 있다. 뮤지컬은 역시 화려함의 극치였다. 우선은 압도적인 무대의 영상미가 우리 눈을 사로잡는다. 호화로운 실내 파티홀, 고전풍의 기차역, 시원한 들판 등 무대는 계속 바뀐다. 8t 타워와 2.5m에 이르는 거대한 기차세트는 관객의 감탄을 자아내고, 움직이면서 화려한 장면들을 보여주는 여러 개의 LED 스크린과 3D 영화를 방불케 하는 뒤쪽의 대형 스크린은 첨단 테크놀로지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첨단 디지털 기술이 없었다면 무대, 영상, 음악이 이렇게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앙상블을 연출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화려한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현대 공연의 예술미가 테크놀로지에 좌우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쨌거나 첨단 기술 없이 예술성만 갖고는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져 버린 관객의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어원을 따져보면, 원래 예술은 기술과 같은 뿌리였다. 그리스어의 테크네(techne), 라틴어의 아르스(ars)는 어떤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숙련된 능력 또는 기술을 의미했다. 여기에서 파생된 프랑스어의 아르(art), 영어의 아트(art), 독일어의 쿤스트(Kunst)도 마찬가지 의미였다. 그러다가 차츰 인간에게 유용한 뭔가를 잘 만드는 기술은 지금의 테크놀로지 개념으로 발전했고, 그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기술은 지금의 예술 개념으로 발전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효용적인 기술과 심미적인 기술을 구분해 전자는 테크닉, 후자는 예술(fine art)이라고 말한다. 만약 좋은 것을 잘 만들면서도 아름답게 구현해 낸다면, 그것은 기술이면서 동시에 예술이 된다. 원래 하나의 뿌리였던 만큼 기술과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것은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의 대표저작 중에 <사랑의 기술>이란 책이 있다. 영문명은 이다. 이 책은 연애개론서나 연애 비법에 관한 책이 아니다. 프롬은 사랑은 즐거운 감정이지만 기술이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지식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남녀 간의 성애뿐만 아니라 형제애, 모성애, 신에 대한 사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랑에 관한 이론과 실천을 이야기한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와 일체감을 느낄 것인데 나의 목적을 위한 대상으로서 필요로 하는 그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그와 일체감을 느낄 것이다”, “주는 것은 곧 부유해지는 것을 의미하므로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많이 주는 사람이 부자다”, “사랑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며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 등 그야말로 주옥 같은 문장들을 만나게 된다. 

프롬이 이야기하는 사랑의 기술은 단순한 테크닉이 아니라 철학이자 예술이다. 기술이 경지에 오르면 예술이 되고, 진정한 예술이 되려면 기술과 노력이 필요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기술과 예술은 곳곳에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다. 때로는 동전의 앙면처럼 일체를 이루고 있어서,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기술로 보이기도 하고 예술로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첨단기술시대의 예술은 기술의 뒷받침이 필요불가결하다. 원래 하나였던 것이 분리되면 결국 본래로 돌아가려는 본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기술은 예술을 향하고 예술은 기술을 향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예술 없는 기술’이나 ‘기술 없는 예술’로는 대중의 마음을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