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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 블록체인 혁명의 사상적 원류를 찾아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3.09
          

블록체인 혁명의 사상적 원류를 찾아서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


현재의 블록체인 기술은 비트코인을 시작으로 한 암호화폐를 탄생시킨 기반 기술로 유명해졌지만,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해 중앙집중화된 금융시스템에서 이 문제를 촉발시킨 당사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이들을 보호해주기 위했던 미국 정부의 정책적 결정 등에 분개한 엔지니어들이 기존의 암호화 기술과 PKI 기술, 그리고 분산컴퓨팅과 관련한 다양한 기술들을 종합적으로 조합해서 제시한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금융 부분만 혁신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이런 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방식에는 지난 수십 년간 이어온 도도한 사상적 흐름이 있다. 이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블록체인을 논하는 것은 단지 기술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이들의 사상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신뢰하고 사회의 시스템도 정비가 될 때 블록체인이 일으키는 진짜 혁명이 시작될 것이다. 오늘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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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라는 책에서도 썼지만,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인간과 사회 시스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던져준 원류는 1950년에 발간된 노버트 위너(Nobert Wiener)"The Human Use of Human Beings: Cybernetics and Society" 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 책과 사이버네틱스에 대해서도 따로 논할 기회가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인공지능이나 현대의 인터넷과 관련한 이야기, 그리고 카운터 컬처에 대한 이야기까지 진행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멀리까지 원류를 찾는 것은 무리일 듯 싶다. 그보다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가까웠던 1989년을 전후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전 세계로 퍼져나간 사이버펑크(Cyberpunk)와 관련한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1989년 텍스트로 인터넷을 하던 시절, 아직 웹은 탄생도 하지 않았을 당시 R. U. Sirius (읽으면 당신 심각해? 라는 발음이다) 라는 인물이 몬도 2000(Mondo 2000)이라는 잡지를 창간한다. 미래학자이자 SF소설가로 유명한 사이버펑크의 대가 윌리엄 깁슨도 즐겨보았다는 이 잡지는 컴퓨터와 네트워크가 보여줄 미래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였다.

R. U. Sirius1992년 몬도 2000을 같이 집필하던 St. Jude Mihon과 함께 창조적인 해커들이 세상을 변형하고 지배하는 세상을 소재로 한 SF소설을 같이 쓰고 있었는데, 암호화를 통한 해커들이 자유를 확보하고 정부의 감시에서 벗어난다는 설정을 하였다. 그리고, 이런 설정을 이야기하면서 에릭 휴즈(Eric Hughes), 존 길모어(John Gilmore), 팀 메이(Tim May)와 함께 다양한 사이버펑크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당시 팀 메이는 공산당선언(The Communist Manifesto)을 흉내낸 암호화무정부주의자선언(The Crypto Anarchist Manifesto)이라는 것을 쓰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암호화된 무정부주의자인 스펙터(specter)가 등장하고, 암호화된 통신과 익명성을 가진 온라인 네트워크가 정부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서 경제활동을 컨트롤하고, 정보들은 비밀리에 유지되는 그림을 그려냈다.

당시의 암호화 기술을 중심으로 한 이런 문화는 네트워크가 확대될수록 정부와 같은 빅브라더의 통제가 커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대한 탈출구의 역할을 하였고, 1990년 초반 다양한 암호화 기술에 심취한 해커들이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정기적으로 회합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 중 유명한 인물 중의 하나가 현재 와이어드의 수석기자로 해커 선언문과 <해커스>란 책을 쓰기도 한 해커문화의 대가인 스티븐 레비(Steven Levy)이다. 또한, 존 길모어는 암호화와 관련한 다양한 문서들을 사람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는데, 이 때 미국 국가안보국 NSA에서는 존 길모어를 방첩법(Espionage Act, 우리나라로 치면 국가보안법쯤 된다) 위반으로 잡아들이겠다고 위협을 하자, 이 사실을 공표하여 위기를 벗어나기도 하였다. 필 짐머만(Phil Zimmermann)이 개발한 PGP(Pretty Good Privacy)는 당대 최고의 암호화 소프트웨어라는 칭송을 받으면서 사이버펑크에 열광한 수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이 되었고, 비상업적 용도로 완전한 오픈소스로 공개되었다. PGP는 그 알고리즘 자체는 전혀 몰라도 누구나 간단히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되어 암호화된 메시지와 데이터를 네트워크를 통해 안전하게 보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클린턴 행정부는 19934, 암호화와 관련한 정책을 발표한다. NSA에서 안전한 음성통화를 위해 암호화 칩셋인 클리퍼 칩(Clipper Chip)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공공부문에서 사용하는 것을 강제화하려는 시도를 하는데, 이 때 암호화 알고리즘을 공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백 도어를 열어서 다양한 감시/감청을 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이를 좌절시키기 위해서 나섰던 집단들도 사이버펑크 운동을 주도했던 존 길모어 등이다. 이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클린턴의 이런 시도는 결국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었다. 이 사건이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것은 강력한 권력을 가진 정부 등에서 주도한 중앙집중적이고도 제어를 할 수 있는 어떤 상황에서 벗어나 산업계와 개인의 자율적 선택으로 네트워크에서의 자유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사실 블록체인 혁명의 커다란 핵심적인 사상의 원류는 이런 역사적 사건들과 맥이 닿아 있다. 그 뒤에도 위키리크스의 줄리안 어산지(Julian Assange)NSA의 기밀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일련의 사건들에서 보듯이 과거의 빅브라더와 암호화를 이용한 무정부주의자들의 충돌이 다시 한번 가시화되고 있는 사건들은 지난 30년 간 꾸준히 진행이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블록체인발 혁명이 지금까지 진행된 것과 그 양상이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바로 음지가 아니라 이런 사상이 양지로 나와 단순히 해커들만의 문화가 아닌 주류 문화로서 기존 사회와의 타협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블록체인이라는 인터넷 기반의 인프라가 이런 사상의 전파를 더욱 쉽게 만들고 있으며, 여기에 오픈소스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양지에서 분산화된 사회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 개발자 집단의 성공적인 경험과 문화가 더해지면서 폭발적으로 전 세계와 전방위적인 산업과 사회 시스템에 적용되는 형태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블록체인을 단순히 기술로서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영역이나 찾으면 된다는 식의 특정한 산업의 테두리로 묶으려는 시도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블록체인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메시지와 사상, 그리고 경험은 최소한 지난 30년 간 다양한 가능성도 보여주었고, 동시에 그 이상으로 거대한 문제점도 크게 부각시켰다. 이제는 이를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가기 위한 젊은 혁명가들을 많이 필요로 하는 시기다. 현재의 상황은 산업혁명 초기 자본주의가 정립되고, 그로부터 50년 뒤에 공산주의 이론이 등장하면서, 수 많은 사회혁명이 시작된 근대 국가가 정립되던 시기와 유사하다는 생각이다. 산업혁명은 단순히 산업만 바꾸지 않았다. 우리가 현재 믿고 있는 수 많은 사상과 사회적 믿음도 거대한 소용돌이와 변혁, 투쟁과 타협 등을 통해 100년 이상 단련이 되면서 강고한 틀로 자리를 잡았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리려고 한다. 그렇다면, 기술이 가지고 있는 파괴적인 사회적 메시지를 읽고, 우리가 믿고 있는 상당 수의 것들이 과연 진실로 옳은 것인가를 반문하고, 현재 주어진 변화의 씨앗을 접목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다같이 고민해봐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문명의 변화를 읽지 못해 끊임없는 오판을 하고 자신들의 쌓아둔 기득권과 함께 몰락한 수 많은 역사의 패배자들의 전철을 우리가 밟게 될지도 모른다. 더구나 인터넷 덕분에 이제는 새로운 사상의 전파와 그 협력자들을 모으고, 행동으로 나서는 사이클도 과거와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빨라졌음을 기억하자. 그리고 현재의 시스템을 지키는 것 이상으로 미래세대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행동을 우리가 하고 있지는 않은지 진지하게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