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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 5G시대, `속도`는 뭘 바꾸는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11.29
          

5G시대, `속도`는 뭘 바꾸는가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2018 평창 올림픽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세계인의 스포츠 제전, 동계올림픽은 강원도 평창에서 29일부터 25일까지 17일간 개최된다. 세 번의 도전 끝에 유치한 올림픽이니만큼 제대로 준비해서 의미 있게 치러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 평창올림픽에서는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강국답게 세계 최초로 5G 시범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라고 한다. 5G5세대 이동통신이다. 4G LTE 무선통신보다 약 100배 빠르고 최신 기가인터넷보다도 20배 빠른 서비스다. 영화 한 편을 단 8초 만에 받을 수 있는 속도다. 속도만 빠른 게 아니다. 질적인 측면에서도 기존 이동통신보다 훨씬 우수하다. 시속 500km/h에서도 무선통신이 가능하고, 1제곱킬로미터 범위 내에서 100만 개 이상의 기기에 접속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정보통신기술은 현대과학기술 중 최첨단 분야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블록체인, 5G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들은 대부분 정보통신기술이다. 정보를 주고받고 공유하고 저장하는 기술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속도와 안정성이다. 얼마나 많은 정보를, 더 빨리, 더 안정적으로 전달하는가가 기술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다. 어찌 보면 문명발전은 속도와 관련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과학기술은 교통, 통신, 업무의 속도를 단축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최초의 세계제국인 로마제국은 길을 잘 닦았던 나라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로마는 사통팔달의 길을 만들었고, 그 길을 통해 군대가 신속하게 이동하면서 제국의 영토를 넓힐 수 있었다. 자동차, 열차가 시속 몇 km/h로 달릴 수 있는지, 얼마나 빨리 접속해 정보를 전달하고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지 등의 속도는 인간의 욕망을 투영한다. 고속열차가 시속 300km/h를 주파한 지는 꽤 오래 됐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더 빠른 속도를 갈망한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Citius, Altius, Fortius)'는 근대올림픽이 내걸고 있는 모토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 이를 뛰어넘겠다는 진취적인 정신을 담고 있다. 인간이 신체와 오감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과학기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학기술의 산물인 발명품과 기구들은 대부분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도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화 및 무선통신장비는 인간 청각능력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었고, 망원경과 현미경은 인간 시각능력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줬다. 자동차는 인간 다리의 한계를 넘어서게 해주었으며, 계산기와 인공지능은 인간의 연산능력, 두뇌역량의 한계를 넘어서게 해준다. 교통수단으로 더 빨리 이동하고, 계산기, 컴퓨터로 더 빨리 업무를 처리하고, 무선통신으로 더 빨리 정보를 전달하는 등 인간은 속도혁명을 통해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올림픽 역사를 살펴보면 과학기술과 속도의 상관관계를 읽을 수 있다. 1936년 히틀러는 베를린 올림픽을 개최했는데,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1935년에 독일 과학기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속도 무제한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을 개통한다. 1939년 독일자동차 벤츠는 아우토반에서 순간시속 600km/h를 주파해 세계기록을 세운다. 1964년에는 일본에서 도쿄올림픽이 개최되는데, 개최 직전에 세계최초의 고속철 신칸센이 개통된다. 당시 신칸센의 최고시속은 256km/h였다. 2015년 일본 리니어 주오 신칸센은 주행테스트에서 최고 시속 603km/h를 기록해 다시금 일본의 기술력을 과시했다.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보여줄 5G는 아우토반이나 신칸센의 기술력에 비견할 만하며 아마 획기적인 사회변화를 가져올 기술이다.

사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갖는 기술적 의미가 아니라 인문학적 의미다. 기술발전 자체가 의미 있는 게 아니라 기술이 인간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가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더 빠른 속도를 가능케 해주는 신기술의 출현은 단지 시간을 단축시켜주는 데 그치지 않고 업무방식, 소통방식, 생활방식의 변화를 초래한다. 타자기에서 컴퓨터로 바뀌면 업무방식이 바뀌고, 무선호출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뀌면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바뀐다. 마차에서 자동차로, 기관차에서 고속열차로 바뀌면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달라진다. 업무시간, 전송시간, 이동시간이 단축되면 궁극적으로 인간의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여유시간이 늘어난다. 속도혁명으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기술진보가 여유시간을 가져다주는 것은 문명의 진보요, 늘어난 여유시간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은 인간의 문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