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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 인공지능시대, 문과는 필요 없나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7.23

인공지능시대, 문과는 필요 없나요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위원


 지난해 세기의 바둑대결에서 인공지능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을 꺾어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알파고 2.0은 최근 세계 바둑 랭킹 1위인 중국의 커제마저 가볍게 제압했다. 속수무책으로 세 번을 내리 패한 커제는 마지막 대국에서 눈물을 흘렸고 “알파고가 지나치게 냉정해 그와 바둑을 두는 것은 고통”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인간 바둑고수를 차례로 격파한 알파고는 바둑계 은퇴 선언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예고했다. 알파고 개발사 구글 딥마인드의 CEO 데미스 허사비스는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인공지능은 인류가 새로운 지식영역을 개척하고 진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면서 알파고를 바둑에 특화된 인공지능이 아니라 과학, 의학 등 범용 인공지능으로 진화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조만간 인공지능은 의학, 교육, 금융, 서비스 등 우리 삶의 곳곳으로 들어올 것이다.

 요즘 학교 강연을 나가면 주로 인공지능과 인간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한 강연에서 어떤 고등학생이 이런 질문을 했다. 인공지능시대에는 SW나 엔지니어링 관련 직업이 계속 늘어날 텐데 그러면 결국 인문학이나 문과는 필요 없어지지 않겠느냐는 질문이다. 아마 문과 학생들은 미래에 대해 더 큰 불안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안 그래도 위축되어 있는 인문학은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으로 그야말로 고사 위기를 맞고 있다. ‘인문계 출신 구십 퍼센트가 논다’를 줄인 ‘인구론’, ‘문과 출신이라 죄송합니다’를 줄인 ‘문송합니다’ 등의 신조어는 인간 성찰을 기반으로 하는 인문학이 홀대되는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점은 르네상스였다. 14~16세기 서유럽문명사에서 학문, 예술의 재생과 문화부흥운동이 일어난 시기다. 중세의 세계관은 한마디로 모든 것이 신의 섭리라는 것이었고, 르네상스 이후 근대적 세계관은 인문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과학, 기술, 문학, 예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스스로를 돌아보았고 그러면서 인간 자신에 대한 믿음이 커졌다. 오늘날 첨단과학기술 발전은 다시금 인문주의적 관점을 필요로 하고 있다. 어떤 존재가 얼마만한 가치를 갖는가는 그것이 없는 상황을 가정해보면 명확해진다. 만약 사물인터넷이나 인공지능이 없다면 있을 때보다는 많이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문학, 역사, 철학이 없는 세상은 어떨까. 인문학이 없는 세상은 더 이상 문명화된 인간세상이 아니다. 작금의 4차 산업혁명 논의에서 인문학이 언급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핵심기술이나 전략보다 근본적인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간과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인간적 관점에서 기술의 의미나 가치를 탐구한다. 독일은 제조업 혁신을 이야기하면서 인더스트리 4.0을 내세웠고, 일본은 여기서 더 나아가 산업, 사회, 일상생활까지 포함하는 소사이어트 5.0 개념을 천명했다. 일본 정부가 지향하는 인공지능국가는 자금, 제도, 인재 등의 장애를 없애고 생활이나 사회 활동에서 인공지능을 구사하면서 사람의 행복으로 연결되는 사회다. 인공지능국가도 궁극적으로는 인간행복을 지향해야 함을 강조한다. 

 인간의 관점, 인간적 가치, 인간행복을 지향하지 않는 첨단기술은 인간의 목표가 될 수 없다. 모두에 언급했던 학생의 질문에 대해 필자는 “인공지능시대라고 문과가 사라질 수는 없다.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기술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 답했다. 인공지능이 발전해도 문과라서 죄송한 세상이 돼선 안 된다. 새 대통령도 문과 출신이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존재에 대한 성찰을 하지 않으며 기계는 인문학을 할 수 없다. 인문학은 인간의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인문학이야말로 기계와 인간을 구분해주는 척도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