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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생애.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6.07.04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생애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1928년 10월 3일 ~ 2016년 6월 27일)는 미국 뉴욕 출생하여 LA에서 사망하였다. 앨빈 토플러는 세계적인 미래학자로, 디지털 혁명, 통신 혁명, 사회 혁명, 기업 혁명과 기술적 특이성 등에 대한 저작으로 유명하다. 뉴욕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으며 이후에는 미국 중서부 지방에서 5년간 노동자로 산업사회의 대량생산의 현장에서 일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한편 그의 아내인 하이디 토플러는 대학시절 언어학을 전공하는 학생일 때 만나게 되었으며 이후 중서부지방에서 토플러가 노동자로 일하는 동안 그녀는 알루미늄 공장에서 일하면서 노동조합의 간사로 일하기도 하였다. 이때 노조의 지원을 받는 신문에서 일하게 되었으며 이후 펜실베니아 데일리지의 워싱턴 지국에서 일하게 되면서 3년 동안 미국 의회와 백악관 출입 기자를 하게 되었다. 이후 뉴욕으로 돌아와서 포춘(Fortune)지의 노동관계 컬럼니스트로 일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경제와 경영 그리고 기술과 기술에 의한 영향에 대한 관심사를 넓혀갔으며 이에 대한 저술이 시작되었다. 이후 그의 관심은 사회의 변혁에 대한 반응을 조사하는 것으로 이어졌으며 21세기 군사 무기와 기술의 발달에 의한 힘의 증가와 자본주의의 발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활동했다. 포춘을 떠나게 되면서 IBM사의 의뢰로 사회와 조직이 어떻게 컴퓨터로부터 영향을 받는지에 대한 논문을 썼다. 이때 그는 컴퓨터 업계의 전설적인 대가들과 인공지능 전문가들과 교류하게 되었으며 제록스사는 제록스 연구서에 대한 기사를 의뢰하고 AT&T는 전략상 자문을 의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이후 발전하는 통신기술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으며 정부의 AT&T 해체 명령을 이보다 십여년 전에 예측하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에 그는 <미래의 충격>을 저술하기 시작했으며 이 책으로 인해 그의 작가이자 강사로서의 경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96년에는 톰 존슨과 함께 토플러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하였으며 이 회사를 통해 그가 가진 아이디어들을 실현화하는 활동을 벌였다. 대한민국, 맥시코, 싱가폴, 오스트레일리아, 미국의 정부들과 비정부민간단체, 일반기업들을 대상으로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해 오고 있다. 그는 그의 아내이자 공동저자인 하이디 토플러와 함께 활동하며 그들은 현재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지에 따르면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래학자"로 불리고 있다.

앨빈 토플러는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 정부의 의뢰를 받아 2001년 《21세기 한국 비전》이라는 책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은 원인을 그 나름의 시각으로 진단했다. 그는 책 속에서 한국이 1970~80년대의 산업화 과정에서 채택했던 경제발전 모델의 한계를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했다.


시대의 흐름이 지식정보화사회로 전환되어감에 따라 경제사회 발전전략 역시 그에 걸맞은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했어야 하는데도 한국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 산업화시대의 발전전략을 그대로 고수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이 1990년대에 겪었던 잃어버린 10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무엇보다 과거 산업화 초기 굴뚝경제시대의 교육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편해서 유연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갈 수 있는 미래형 인재를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지금 이 순간부터 한국은 산업화 초기단계처럼 저임금을 강점으로 한 후진적 경제종속국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현대사회에 맞는 소프트웨어적 경쟁력을 갖춘 선진국이 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며, 후진국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라도 산업화시대의 경제발전 모델을 혁신적인 지식경제시대, 정보화시대의 발전 모델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앨빈 토플러는 한국의 입시위주 교육을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라고 평했다.

 

<저서>

1. 미래쇼크(1970)

앨빈 토플러의 수많은 저서 중 비교적 초기에 출판된 책이 《미래쇼크》다. 1970년에 나온 책으로 미래학 분야에서 보면 그야말로 고전 중의 고전이다. 놀라운 점은 출판된 지 40년이나 지난 지금도 책의 내용 면에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앨빈 토플러에 따르면 당시 사람들이 겪던 미래쇼크는 지금까지 영속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종말을 고하고 일시성, 새로움, 다양성의 시대가 닥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되리라고 믿었던 것들이 어느 순간 달라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시 1회용 종이컵, 기저귀, 라이터 등 1회용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이어서 이러한 일시적인 것, 즉 일시성은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많은 새로운 것들이 나타남으로써 받게 되는 새로움에 대한 충격도 상당한 것이었다. 또한 지금까지의 생산자 혹은 기업 중심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소비자들, 시민들이 다양한 선택권을 갖는 다양성으로 인한 충격도 당시 사람들이 겪은 미래쇼크였다.

이러한 쇼크를 무리 없이 잘 소화해 내기 위해 예방과 치료가 중요하다. 미래쇼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충격을 분산시켜 완화해야 하고 쇼크에 적응토록 하는 것이 유효한 치료법이 될 수 있다고 앨빈 토플러는 주장한다. 또한 이 같은 쇼크의 예방과 치료에 대한 미래 교육이 필요하며 미래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모임 역시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내일의 문맹은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 앨빈 토플러는 이 책을 통해 유명세를 얻었다.

 

2. 제3의 물결(1980)

《미래쇼크》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이후 10년 만에 쓴 책이 너무나도 유명한 《제3의 물결》이다.《미래쇼크》가 변화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제3의 물결》은 변화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가 주장한 첫 번째 물결은 농업혁명이고, 두 번째 물결은 산업혁명, 세 번째 물결은 정보혁명이다.

제2의 물결인 산업혁명 시기는 고도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대량생산·대량분배·대량소비·대량교육·대량휴양·대량문화·대량살상무기 등이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였다. 이러한 것들은 결국 표준화되고, 중앙화되고, 집중화되는 현상을 낳으면서 관료주의가 만연하고 팽배하게 되는데, 이러한 사회를 제2의 물결에 의한 산업사회라고 얘기한다.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을 집필할 당시의 사회는 후기산업화사회라고도 일컬어지는 정보화사회다. 이때는 제2의 물결에 비해 탈대량화 내지 다양화되고 지식기반의 생산과 변화가 가속되는 특징이 있다.

《제3의 물결》 중 지금 읽어도 감격스러운 것 중 하나가 ‘소수세력Minority power의 원리’이다. 다수결이라고 하는 제2의 물결시대의 전통적인 기본원리는 날로 시대에 뒤떨어지며, 중요한 것은 다수가 아니라 소수라는 것이다. 과거 미국 정부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것’이었다. 소련 공산당은 ‘노동자계급’을 대변했고, 닉슨은 미국의 ‘말없는 다수’를 대표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제2의 물결 사회의 다수결 원리는 인간적이고 해방적인 것으로,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다수였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좋은 기회를 제공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제3의 물결 사회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풍요로운 사회적 분위기에서 가난한 이들이 다시 소수파가 되고, 그 결과 다수결 원리는 잘 사는 사람들을 대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제3의 물결은 다수결 원리와 사회적 정의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모든 재래적 가설에 도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제3의 물결로 이행하고 있는 사회에서 다수결 원리는 더 이상 정당한 원리로서 적합하지 않으며 또 반드시 인간적인 것도 아니고 민주주의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변화한 사회에서 그에 꼭 맞는 정치제도가 없기 때문에 소수파는 비타협적이 되고 다수파를 찾아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며 소수파간의 대립이 격화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다양성을 수용하고 정당화시켜 주는 새로운 장치, 즉 변화하고 증가해 가는 소수파의 급변하는 요구에 민감한 새로운 제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소수파의 민주주의를 설계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접근방법은 ‘반직접민주주의’라는 제3의 물결에서 주장하는 두 번째 정치체제의 골격에서 짚어볼 수 있다. 이 원리는 대표자에게 의존하는 것으로부터 스스로 직접 대표자가 되는 것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는 불확실하며 아직까지 제안의 단계이기에 위험하고 이상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미래의 새롭고 실현 가능한 제도를 설계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제3의 물결》에서 주장하는 세 번째 정치체제 원리는 ‘결정권의 분산Decision division’이다. 이는 체제를 더 많은 소수파에게 개방하고 시민들에게 자신들을 통치하는데 있어서 더 많은 직접적인 역할을 하게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제시된 제안이다. 이로써 결정권의 집중을 분산시켜 결정권이 소속된 곳에다 그것을 이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지도자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마비상태에 대한 해독제인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이것을 ‘결정권의 분산’이라는 이름으로 제시했다. 제도적인 과중부담에서 생기는 오늘날의 결정권 집중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결정권을 분산시켜 재배분할 필요가 있으며, 결정권을 더욱 광범위하게 배분하여 의사결정의 장소를 바꾸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앨빈 토플러의 의견 중 또 다른 재미있는 부분은 정치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구세주 콤플렉스’이다. 맨 윗자리에 있는 사람을 바꾸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환상, 즉 지도자를 바꾸면 어떻게 하든지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환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과거를 되짚어 볼 때 제2의 물결 정치구조에 뛰어든 ‘가장 강력한’ 제1의 물결 지도자는 제2의 물결의 ‘가장 허약한’ 지도자보다도 더 허약하고 뒤죽박죽이고 변덕스럽고 어리석은 것으로 보이게 된다.

이와 같이 산업화사회의 지도자는 정보화사회로 들어오면서 제2의 물결에 익숙한 나머지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거나 넘어지기도 하면서 일반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이 미덥지 못한 지도자를 좀 더 강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로 교체하면 어떻게든 우리 사회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그는 이 자체가 잘못된 환상이라고 지적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앨빈 토플러는 그 중에서도 과거 산업혁명시대에 통용되었던 강한 리더십이 정보화시대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산업사회의 과단성 있고 고집이 세고 독선적으로 보이는 지도자들을 찾는 것은 일종의 향수에서 나온 행위이며, 구시대의 가정에 바탕을 둔 아버지나 어머니의 상像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지금도 재미있게 되짚어 볼 만한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앨빈 토플러는 “내일의 지도자들은 강력한 리더십보다는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능력이 있고, 불도저처럼 밀고나가는 힘보다는 상상력이 있어야 하고 과대망상이 아니어야 하며, 새로운 세계에서의 리더십의 한계를 인식할 줄 아는 지도자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3. 권력이동(1990)

종전의 권력은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권력이었지만 앞으로는 문화적인 힘을 가진 주체가 새로운 권력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로운 권력은 컴퓨터나 정보, 네트워크, 영화, 미디어 등을 토대로 창출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권력자들은 주로 개인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컴퓨터에 앉아서 컴퓨터로 일을 시작해서 미디어로 끝내는 지식의 연금술사다.

이러한 권력이동은 산업과 문명을 교체하고 나아가 엘리트까지 교체하게 되며, 결국 새로운 지식을 누가 먼저 차지하느냐 하는 것이 권력투쟁의 핵심이 될 것이다. 즉 새로운 지식을 장악하는 사람이 가장 큰 권력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다. 다만 앞으로 이러한 권력투쟁은 계속 심화되겠지만 어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승리하는 일은 없으리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4. 부의 미래(2006)

《부의 미래》에서 속도충돌의 위기 즉, 기업이 변화하는 속도를 정부나 관료조직 등의 다른 기관들이 따라가지 못해서 일어나는 위기와 긴장을 지적했다. 기업이 100마일의 속도로 변하면 시민단체가 약 90마일의 속도로 변하는 데 비해 노조는 30마일, 정부는 25마일, 학교는 10마일, 정치조직은 3마일, 법은 1마일로 변하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의 편차가 경제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고 했다.